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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헌금에 담긴 마음” -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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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9-2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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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에 담긴 마음”

요즘 저는 화상회의 어플을 이용해서 성도님 몇 분과 와플큐티나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해도 꽤나 안정적으로 서로 대화하고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고린도후서 9장이 본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하는 헌금에 대해 고린도교회에게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헌금이라는 주제 자체가 워낙 우리와 밀접하고 현실적이어서 그랬는지 그날따라 나눔의 분위기가 더 좋았습니다.

큐티 나눔 모임에 참여하신 분들 대부분이 헌금이 어떤 것인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헌금은 금액을 얼마나 하는지, 어디에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웃을 돕는 마음이며, 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입니다.


1. 헌금은 이웃을 돕기 위해 내 것을 내어놓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믿는 자들이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은 재물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도 마찬가지로 바울은 헌금에 대해 하나님께 바치는 돈이라는 개념보다는 어려운 이들을 돕는 돈이라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 지금 넉넉하게 사는 여러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준다면 그들도 넉넉할 때에 여러분을 도와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서로 도움을 받게 됩니다. “ (고린도후서 8:14)

물론 교회 공동체를 운영해나가는데 필요한 재정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헌금의 용도는 교회 안과 밖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에서는 ‘드리는 돈’이라는 의미의 ‘헌금’ 대신에 ‘내 것을 내놓아 남을 돕다’라는 의미의 ‘연보’라고 번역했습니다.


2. 헌금의 첫 번째 의미가 ‘이웃 사랑’이라고 해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 돈을 받는 주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에게 바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가진 대로 받을 것이며 없는 것을 받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8:12)


어디에 내든, 얼마를 내든,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이웃을 돕기 위해 드리는 것을 ‘헌금’ 혹은 ‘연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 “얼마를 내야 할 것인가, 10분의 1?” “어디에 내야 하는가, 꼭 교회에만?” – 진짜 중요한 문제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에게 정말로 이웃을 돕는 기쁨과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이 있는가?”라는 질문 같은 것들 말입니다.


큐티 모임 중에 한 분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셨습니다. 오래 전부터 자동이체로 헌금을 하고 있는데,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따로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알아서 돈이 빠져나가더라는 것입니다. 헌금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나 부담도 없지만, 그렇다고 헌금에 대해 기쁨이나 감사한 마음도 없는 것이죠. 이웃을 돕는 마음도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교회에 돈을 보낸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헌금이라고 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한 나눔에 저를 비롯해 다른 참여자들도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오후에 교회 카페로 어느 집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랜만에 뵈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일로 따로 보자고 하셨을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집사님께서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셨습니다. 지난 2월부터 교회에 못 나오는 동안 집에서 예배하시면서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차곡차곡 봉투에 담아 모아오셨습니다. 집에 있던 헌금 봉투를 다 쓰셔서, 교회에서 봉투를 더 가지고 가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계좌이체로 해도 되고, 봉투 하나에 모아도 괜찮겠지만, 매 달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봉투에 담으셨을 것을 생각하니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헌금을 준비할 때, 꼭 깨끗한 신권을 준비하시는 어른들이 계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다리미로 다려서 봉투에 넣는 분들도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율법적인 모습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아닐까요? 봉투를 쓰든, 계좌로 이체하든, 교회에 하든, 어느 기관에 후원하든… 우리 마음이 이웃들을 섬기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으로 가득하면 100원을 드려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 (고린도후서 9:7)

-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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