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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뻔한 드라마" _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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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9-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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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드라마"


서로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난하게 생활하는 주인공 커플이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살던 중에, 여차저차 해서 남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갈 기회를 얻습니다. 여주인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남자는 곧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며 승진합니다. 좋은 집으로 이사가고, 좋은 차를 탑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여주인공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여주인공이 외로워할 때마다 남자는 “널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느 새 남자의 마음에는 여주인공보다 성공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됩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되겠죠. 뻔한 드라마의 뻔한 결말입니다.

여주인공을 위해서 돈을 벌겠다고 시작했는데, 결국 여주인공을 버리고 돈을 택하는 남자의 이야기. 이런 상황을 ‘주객전도’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 모습을 보면 이런 뻔한 드라마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모이는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결국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한 것이죠. 그리고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참된 ‘예배’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즉,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모여서 말씀을 듣고 배웁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이는 것 자체가 너무 강조되다보니, 우리의 모임을 통해 이웃이 어려움을 겪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마치 여주인공을 위해 성공하려던 남자가, 성공 때문에 여주인공을 버리는 것 처럼요. 우리가 그렇단 말이죠.

여기까지 읽으신 당신은 지금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이 최근의 현장예배와 코로나19 방역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 하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제가 계속 ‘우리’라고 표현한 것이 조금 거슬리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그런 겁니다.

사실 코로나19 방역과 현장예배의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안에 잠재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모이는 예배에서 조금이라도 더 은혜받기 위해 사용한 큰 사운드가 이웃에게 소음의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을 무시했을 때부터, 또는 우리가 모이는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이웃들이 사용하는 골목에 불법 주차를 했을 때부터 말입니다.

뻔한 드라마에서 남자는 한 번에 악역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거죠. 하지만 사실 드라마 1화를 볼 때부터 시청자들은 남자가 결국 주인공이 아니고, 악역으로 변할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뻔한 드라마의 뻔한 설정과 뻔한 연출은 남자의 ‘눈빛’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성공과 돈을 향한 욕망을 드러내는 숨겨진 ‘눈빛’ 말이죠. 상황은 천천히 변해가지만 사실 사람은 이미 그렇게 될 만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우리 이야기를 해보죠. 우리에게 일어난 이 ‘주객전도’는 천천히 일어난 일일까요? 원래는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기 위해 모였던 것인데, 모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다보니 조금씩 우리 마음이 변해서 지금의 상황까지 온 걸까요? 아니면 처음부터 우리가 모인 이유가 내가 잘되고, 내가 성공하기 위한 것이었던 걸까요?

현실은 뻔한 드라마의 연출처럼 우리 속마음을 드러내주지 않아 어쩌면 우리 스스로도 답을 못 찾을지 모르겠습니다. 


-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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