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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4] '살면서' vs '삶의 정황 속에서' -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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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8-2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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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편지 0824]
‘살면서’ vs ‘삶의 정황 속에서’

어느 유명한 목사님께서 설교에 대해 후배들에게 가르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설교할 때 어렵게 말하지 마세요. ‘살면서’ 이러면 될 것을 ‘삶의 정황 속에서’ 어쩌구.. 굳이 왜 어렵게 말을 합니까”

생각해보면 참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참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바로 굳이어렵게 말하는 사람이거든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있어 보이는’, ‘똑똑해 보이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워낙 비어있는 수레라서 소리라도 요란하게 내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어렵게 만든 중심에 교회가 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 주변에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을 보니, 반응이 참 다양합니다. 가슴 아파하며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있고,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그들의 행동에 분노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이 현상을 분석하시기도 하시더라구요. 왜 하필 교회가 이런 일들의 중심에 있을까요? 표면적인 분석으로는 ‘공동식사’와 ‘대면 예배’의 중요성이 다른 종교에 비해 강하다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이런 내용은 공중파TV 뉴스에까지 나와서 다들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설명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최근에 있었던 집회에서의 집단 감염과 그 이후 집회 참가자들이 보여준 방역 당국에 비협조적인 태도들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분석하신 글이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그 글에서는 ‘가짜 뉴스’를 원인으로 지목합니다. 물론 ‘가짜 뉴스’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가리지 않고 많이 있지만, 기독교인들이 유독 가짜 뉴스에 취약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특히 목사님이 말하는 경우에) 상황에 대한 논리나 합리성, 상식을 따지기 전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그게 익숙할까요?

반대로 가르치는 교회도 분명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설교로 들은 내용이 진짜 맞는지 확인하면서 믿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목사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아멘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목사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글을 쓰신 분은 이것을 ‘지성주의 기독교’와 ‘반지성주의 기독교’로 구분하셨습니다. (이 구분이 좋은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지성주의 기독교’보다 ‘반지성주의 기독교’를 선호한다는 겁니다.

저는 그 글을 읽다가 많이 회개했습니다. 성도님들이 지성주의 설교자의 설교보다 반지성주의 설교자의 설교에 더 ‘은혜 받는’ 이유는 성경이 어렵거나 복음이 어려워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지성주의 설교자들이 주로 중산층,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설교와 목회를 하고(혹은 하고 싶어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굳이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설교들이 결국 서울이나 분당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대형교회의 발판이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설교를 떠나 오히려 정 반대로 쉽게 이해하고 아멘 할 수 있는 반지성주의적 설교를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말들로 자신을 포장하곤 합니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더 그렇습니다. 기도 한 번 하려면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말들을 거창하게 표현합니다. 어쩌면 그 속에는 그 말의 ‘내용’보다는 그 표현들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자기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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