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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8] 감탄과 두려움 사이에서 -이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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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8-18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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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편지 0818] 

“감탄과 두려움 사이에서”

보기랑은 조금 다르게 저는 ‘잠수’를 좋아합니다. 그럴듯한 스쿠버다이빙 같은걸 즐긴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사실 물에 들어가 본지가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물과 멀어져 있긴 합니다만, 제 어린 시절의 여름은 언제나 잠수의 계절이었습니다. 충남 연기군 전의면 일대를 흘러내리던 냇가가 제 잠수현장 이었습니다. 해녀들이나 사용할 법한 크고 둥근 물안경이 있었는데요, 그 안에 코까지 모두 밀어 넣고 냇가 바닥으로 내려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물론 사이판이나 제주도 바다처럼 맑은 세계는 아니었지만 나름 민물고기들의 유영과 서식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지요. 냇가가 얕지만은 않아서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따라 가끔 깊은 곳으로 내려가 보기도 했는데, 수압 때문인지 압박감 같은 것이 몰려와 슬쩍 긴장이 되곤 했습니다. 물론 호흡도 짧아서 길게 머물지도 못했구요. 물속에서 오랫동안 호흡할 수 있는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지만, 옛날 시골 냇가에서 철없는 애들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런 어린 시절이 있어서였는지 어느 해 일간지에 실린 <쟈크이브쿠스토>라는 사람의 이야기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프랑스의 해군장교였던 쟈크 이브 쿠스토(Jacques-Yves Cousteau)와 엔지니어 에밀 까냥(Emile Gagnan)이 1943년 아쿠아-렁(Aqua-Lung)이라는 수중호흡장치를 만들어 성공하게 되었는데, 이 시점을 본격적인 스쿠버 다이빙역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전까지는 납이 달린 무거운 신을 신고, 공기 호스를 탯줄같이 달고, 무거운 구리통 속에 갇혀서 어기적거리며 제한된 거리의 잠수밖에는 할 수 없었지만, 쿠스토와 동료들의 노력으로 수심을 정복해가는 획기적인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수심 1야드를 정복할 때마다 인류에게 활동 가능한 공간이 30만 제곱킬로미터씩 열리는 거야"

와우.. 그의 동료 <타예즈>의 흥미로운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다를 정복해 가는 깊이는 얼마 안 되더라도, 그 덕에 인류가 누리게 될 면적은 엄청나게 커진다는 이야기죠. 짧지만 강렬한 통찰에 마치 감전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흥미로운 생각을 이어가다가 문득, 수심을 정복해 가는 일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 때, 인류가 누릴 복은 그 수심과 면적의 관계 이상이지 않을까? 와우.. 그런데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게 될 때 인류가 겪게 될 고통의 크기는 또 얼마만큼 커지게 될까? 오우.. 감탄과 두려움이 교차했습니다.

현재 우리의 상황들을 바라보며, 과거 세계의 역사들을 돌아보며,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떠올려봅니다. 하나님을 들먹이면서도 주변에 ‘화’를 끼치며 살 수 있음을 경계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배워가고, 이웃과 하늘의 ‘복’을 나누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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