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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강물재판 -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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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7-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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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재판, 못 다한 이야기"


어제 함께하는교회 설교 중에 구약의 율법과 함무라비법전의 차이를 보여드릴 일이 있었습니다. 설교를 아직 못들으신 분들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대강만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의 법은 약자를 '무죄추정'하는 재판 방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 함무라비 법전에서는 '유죄추정'을 한다는 것이지요.

바로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강물재판이라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증거나 증인이 없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방식인데 함무라비법전 282조 중, 재판의 방법을 설명하는 제일 앞 부분의 2조에 설명이 나옵니다.

피의자가 스스로 강에 빠지고, 강이 그를 붙잡아서 그대로 빠져 죽으면 유죄이고, 강이 그를 뱉어내서 강 밖으로 나오게 되면 무죄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강물재판의 사례에서 어느 정도 수심의 강에 빠졌는지, 유죄와 무죄의 비율은 어땠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재판에서 말하는 강(이드)은 작은 개울이 아니라 유프라테스강이나 티그리스강처럼 신적 권위를 보여줄 만큼 큰 강이었을 것입니다. 무조건 죽는 정도는 아니어도, 살 수 있는 확률 보다는 죽을 확률이 더 높은 재판 방식일 것 같습니다. 즉, '유죄'가 나올 확률이 더 높은 재판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설교에서는 이 강물재판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드리지는 못했는데, 사실 강물재판의 역사는 함무라비법전의 시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이와 아주 유사한 강물재판이 기독교에 의해서 실행되었습니다. 바로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입니다.

1486년 발행되어 무려 교황으로부터 공식적인 마녀사냥의 교범으로 승인받은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에는 마녀를 재판하는 4가지 방법이 나오는데, 그 중 한가지가 바로 함무라비법전의 강물재판과 유사합니다. 실재 연관성은 알 수 없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이 이란에서 발굴된 것이 1901년이니 사실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함무라비법전 2조가 흑마법 사용자를 판별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132조가 간음한 여인을 판별하는 방법으로 강물재판을 제시한 것을 생각해볼 때, 마녀재판과 분명 유사점이 있습니다. 중세인들은 마녀가 악마와의 간음을 통해 흑마법을 얻었다고 여겼으니까요.

함무라비법전의 강물재판과 마녀의 망치에 나오는 강물재판에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함무라비법전에서는 강에서 살아나오면 무죄, 죽으면 유죄이기 때문에 살아나온 사람은 어찌되었든 무죄가 확정되는 반면, 마녀재판에서는 물에 빠져 죽으면 무죄, 물에서 살아나오면 유죄입니다. 살아나온 사람은 마녀로 확정되어 화형을 당합니다.

마녀사냥에 활용된 강물재판은 '유죄추정'을 넘어서 '유죄확정'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물에 빠져서 '무죄'를 인정받고 죽을 것이냐, 강에서 살아나와 '유죄'로 죽을 것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이 마녀재판의 방식이 성경을 충실하게 따르는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약 8만명이 마녀사냥으로 죽었습니다. 대부분은 여성이었기에 '마술사'나 '마남?'이라고 하지 않고 '마녀'라고 합니다.

성경을 그렇게 사랑하고 존중했던 기독교인들은 왜 성경이 그토록 보호하고 싶어하던 여성들을, 성경의 무죄추정과는 전혀 다른 '유죄 확정' 방식으로 재판했을까요?

물론 가장 근본적인 대답은 인간의 욕심과 악함 때문이겠지만, 저는 또 한가지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그들이 성경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성경을 사랑한다고 하고, 성경을 존중하고, 성경을 신봉하기까지 할 지언정, 성경의 내용은 모르는겁니다. 그러면 자기들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위해 한다고 하는 일들이 그렇게까지 성경과 반대될 수도 있는겁니다.

지금의 우리는 좀 다를까요?
저는 지금의 기독교가 중세의 기독교보다 나은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진실한 사랑이며,
태워 드리는 제사인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 호세아 6장 6절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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