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미디어
main contents

신앙칼럼   |   일상에서 경험한 삶과 신앙의 이야기 

[0925 백발노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9-25 15:35

본문

직장생활을 하던 10여년 전에 독일어를 다시 배우고 싶었다.
고등학교 3년 과정과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독일어를 다시 배우고 싶은 이유는 단지 독일이 좋아서였다. 다 늦게 학원을 다니기도 마땅치 않고 자습할 자신은 더욱 없고 하던 차에 직장 후배의 소개로 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은퇴하신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라 부담 없이 일주일에 두 번씩 퇴근 후 개인교습을 시작하였다.
맨 처음에는 흥미 있던 독일어 공부가 점차 부담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독일어 교수님답게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50분 수업에 10분 쉬고 2교시로 또 50분 수업을 하는 방식이었다.
작은 접이식 이동탁자를 사이에 두고 교수님과 단 둘이 매주 이틀 간 2시간씩 하는 공부는 점점 고문으로 다가왔다. 마침 국정감사 계절이 돌아와서 국감 준비로 한 달만 방학을 하자고 제안 드리고 허락을 받았다.
국정감사가 끝났지만 다시 교수님 댁을 찾아가지 않았다. 아무 연락도 드리지 않고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며칠 전 출근하는 길에 아파트 단지에서 사모님의 부축을 받으시고 아침 산책을 하시는 교수님을 얼핏 보았다. 많이 늙으셨다. 내 머리카락 색깔도 하얗지만 교수님의 머리카락은 하연 것은 물론이고 숱이 많이 줄으셨다.
외모도 10여 년 전의 꼿꼿한 자세는 사라지고 꾸부정한 자세로 사모님의 어깨에 기대어 산책하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인사도 없이 독일어 교습을 중단한 나의 무례함과 이웃에 사시는 그분께 한번도 인사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몹시도 괴로운 며칠을 보냈다. 다음 주가 추석 명절이다. 코로나 덕분에 부모님과 친지를 만나는 시간이 절약된 만큼 모처럼 큰 맘 먹고 인사 한번 가야겠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다.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이사야 46:4)

(황태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