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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 기후의 역습 -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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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08-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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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역습


2020년은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물론이고, 작년 겨울부터 90년만에 가장 더운 겨울이라고 하더니 시베리아는 유래없는 이상고온 현상이 가져온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이상현상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 허리케인, 홍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멀리 갈것도 없이 당장 함께하는교회 지하 로비에서는 이전에 본적 없는 벌래들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노래기'라는 녀석들인데, 이 녀석들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기후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나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의미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환경보호의 신학적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왜 환경을 보호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성경적 접근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자칫 이 문제를 신앙과는 무관한 영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세계적으로 개발이 한창일 때에는 신학적으로도 하나님께서 땅을 '다스리라' 혹은 '지배하라' 하셨으니 인간은 지구를 마음껏 개발하고 사용해도 괜찮다는 신학적 주장이 대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를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채워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세기 1:28)


창세기 1장 28절에서 쓰인 '땅을 정복하여라'라는 명령의 히브리어 '카바쉬'는 강제로 짓밟고 정복하는 것, 강요하는 것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분명 단순히 땅을 경작하는 것을 넘어서는 강제적 지배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땅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개발하거나 변질시키는것을 허락하셨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과 2장은 인간 창조의 측면에서 평행을 이루고 있는데, 2장 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시키신 일을 다르게 표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동산을 돌보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15)


여기에서는 돌보고(일하다, 아바드) 지키게(샤마르)하셨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창세기 1장과 2장이 서로 다른 이들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주장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1:28에서 인간이 개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2:15에서 인간은 환경을 돌보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쓰인 다른 주장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고대 근동의 글쓰기에서 중요한 사건을 2중으로 서술하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임을 지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등)

창세기 1장과 2장이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각도의 서술이라면 1장에서 '강제로 지배하라(카바쉬)'와 2장에서 '일하고 지켜라(아바드, 샤마르)'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에게 땅을 돌보고 지킬 임무를 주셨습니다. 인간은 그 일을 맡은 '청지기'이자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세상을 아름답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땅은 그렇게 쉽게 지켜지지 않을 것이고 '피조물들은 인간의 명령에 그렇게 쉽게 혹은 기꺼이 순종하지 않을 것'(J. N. Oswalt)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은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필요합니다.

즉, 창세기 1:28은 인간의 의도대로, 인간의 필요에 따라 피조세계를 강제로 개발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대로 피조세계를 '강제로' 지켜나가라는 명령이라고 해야 자연스럽게 2:15와 연결됩니다.


어떤 분들은 피조 세계가 결국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환경 보호는 영적으로는 의미가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날은 도적같이 갑자기 올 것입니다.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에 의해 녹을 것입니다. 또한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도 불타 버릴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0, 쉬운성경)


사실 베드로후서의 말씀이 묵시적 상징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Darrell Cosden의 'The Heavenly Good of Earthly Work'을 추천합니다.) 이 땅을 '경작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청지기로서 "어차피 다 없어질 세상이니까 마구 개발하고 써버려도 괜찮을거야"라는 생각은 어처구니없는 직무유기이자 직권남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리해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피조세계를 아름답게 만들고(아바드) 지켜나가라고(샤마르)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쉽지 않기에 강제적 지배(카바쉬)가 필요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에 이 땅의 운명이 다 녹아 없어지든, 혹은 사막에 샘이 솟아나는(이사야 35:7) 방식의 회복이 되든 그것은 관리인이 따질 일은 아닙니다. 명령받은대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피조세계를 아름답게 지켜나가는 일, 분명 이것도 또한 영적인 세계의 일이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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